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청산리 전투 (문단 편집) === 독립군의 준비 === 일본에 맞서 북로군정서를 비롯한 독립군은 무기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여기 도움을 준 이들은 [[체코인]]들과 [[슬로바키아인]]들의 독립군인 '[[체코슬로바키아 군단]](Československé legie)'이었다. 원래 이들은 러시아군 소속으로 유럽 러시아 일대에서 [[독일]] 및 [[오스트리아]]와 맞서 싸우고 있었다. 그러나 1918년 파우스트슐라그 작전을 발동한 [[독일 제국군|독일군]]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군|오스트리아-헝가리군]]이 유럽 러시아 일대로 물밀듯이 들어오자 이들은 시베리아로 밀려났고, [[러시아 내전]]이 벌어지자 백군 편으로 가담하여 [[시베리아 내전|시베리아 횡단철도]]를 장악했다. 하지만 마침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조국 [[체코슬로바키아]]가 독립하자 귀국을 준비 중이었다. 1920년 2월 항구도시 [[블라디보스토크]]에 집결한 이들 군단은 [[소련]] [[적군]]과의 휴전 협정이 성립된 후 쓸모가 없어진 무기를 처분하고자 했고 마침 독립군은 무력으로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무기가 절실하게 필요한 상황이었다. 이에 양측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체코슬로바키아 망명 군대의 일부 병사들이 자신들이 보관하던 무기를 북로 군정서에 판매하였다. 다만 일각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체코 군단 자체가 한국 독립운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한 것은 아니다. 애초에 이들은 [[일본군]]을 포함한 연합군의 후원을 받았기 때문에 일본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으므로 이는 일부 군단원들의 일탈 행위였다. 실제로 일본은 군단원들의 무기 판매 행위를 알고 군단 사령부에 이를 근절하라며 압박을 가했고 군단 사령부는 이 점을 매우 우려했다. 그리고 그들의 고객은 한국인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잔존 [[백군]] 잔당, 중국 만주의 [[봉천군벌]][* 참고로 체코 군단은 이들에게 [[르노 FT]] [[전차]] 36대를 팔았다. 이 전차들은 [[장쭝창]] 휘하에 편성되었다. ]등 다수의 구매자들이 있었다. 결국 일부 군단원들이 무기도 처분할 겸 [[이범석]]의 말마따나 동병상련의 민족도 도울 겸 규율을 어기고 응원과 함께 개인적으로 판매한 것. 무기 거래는 깊은 숲에서 한밤중에 이뤄졌고 동년 7월 독립군은 체코슬로바키아군에게서 매입한 무기인 [[권총]], [[기관총]], [[탄약]] 200정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간도]]로 수송했다. 이때 획득한 무기는 흔히 알려진 것처럼 체코제 무기가 아니라 [[모신나강]] 소총, [[게베어 1871]] 등의 타국 소총들이었다. [[만리허 소총]] 같은 체코제 무기는 군단의 적인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군|오스트리아군]]이 사용했고 군단은 미국에서 위탁생산해 지원해준 [[모신나강]]을 주력으로 사용했다. 참고로 모신나강은 러시아의 독자적인 단위체계로 설계되었기 때문에 [[야드파운드법]]을 쓰는 미국에서 라이센스 생산할 때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미제 모신나강은 성능이 영 시원찮다는 평가를 받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